왜 이런 무모한 시도를? (2/15)

 

#1. 호기심   

 

어느 날 절친 직장 선배님(이하 이옹(李翁)으로 칭함. 자주 나오심)께서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는 제안을 나에게 하신다.

 

내가 진공관 앰프 만들고... 네가 스피커 만들어서 같이 오디오 시스템을 한번 만들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이따금 뜬금없는 말씀은 하시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밑도 끝도 없다.

그 와중에 스피커 공부에 좋은 유튜브 채널을 하나 찾았다고 넌지시 소개해 주신다.

 

두둥…

 

이신렬 박사님의 “서울대 하이파이 스피커 제작 교육””

[그림 2-1] 참조. 링크는 [표 2-1] 참조.

 

그림 2-1: 유튜브 강의 화면

 

No.	강의 제목	URL
1	좋은스피커란? - 주관적평가편	https://www.youtube.com/watch?v=He0B8oNxN-k&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
2	좋은스피커란? - 객관적평가편	www.youtube.com/watch?v=EI08lAF43Ks&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index=2
3	좋은유닛이란?	www.youtube.com/watch?v=q_ap2E_L13k&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index=3
4	좋은인클로져란? - 밀폐형박스	www.youtube.com/watch?v=QRO_GoUz1yQ&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index=4
5	좋은인클로져란? - 밀폐형, 밴드패스형 박스	www.youtube.com/watch?v=KGeV4koPxp4&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index=5
6	좋은인클로져란? - 기공형,PR형,미로형,유닛배치	www.youtube.com/watch?v=URMHFyvSetg&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index=6
7	좋은인클로져란? - 인클로져제작,설계프로그램	www.youtube.com/watch?v=3du0qswfUA0&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index=7
8	좋은크로스오버란? - 기초편	www.youtube.com/watch?v=bk2tEbNoJxI&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index=8
9	좋은크로스오버란? - 심화편	www.youtube.com/watch?v=_uSoNpJAFYk&list=PLvaG2shtX-Tl2FaA1TTvCOaWFcU8ajTll&index=9

 

일단, 이옹(李翁)님의 말씀을 가는귀로 흘려버리고 퇴근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문득 생각이 나서 유튜브를 찾아본다.

 

어 재밌네...

 

어느덧 듣다 보니... 새벽 2시... 

뭐지? 

나도 모르게 쑤~~욱~~! 하고 빠져버린 모양이다.

이 기세로 갔다가는 내일 출근도 힘들지 모르니 내일 계속 듣자.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강의를 들은 5일 만에 거의 10시간짜리 교육을 완강해 버렸다.

 

당연히 이신렬 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걸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국내에 몇 분 안 되는 정통 음향 전문가인 그분의 말씀을 어찌 단숨에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완강 이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진짜가 나타났다~~~~~!!!

 

얄팍한 전자공학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내가 듣기에도 이론과 실무로 다년간 무장한 대가(大家)의 교육이었다.

 

지금껏 AV 시스템이라고 해야 기껏 TV 사운드바 정도만 가지고 있을 뿐이며, 음악 이라고는 거의 듣지 않던 막귀인 내가...

Hi-Fi 오디오 시스템에 급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진짜”라고 표현한 이유는 명쾌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신렬 박사님의 말씀에 “쟁이(Expert)” 특유의 짜증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심도 있는 고민과 연구를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

이에 수반되는 부작용 “짜증”... 진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스피커 한번 만들어 봐?

에이.. 손재주도 없고... 오디오도 모르고... 목공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내가 이런 고급 기술이 필요한 스피커를 만들 수 있겠어?

아냐... 요즘 퇴근하고 심심한데...

해봐? 말어? 

하든 말든... 일단 더 자세하게 들어서 공부 조금 더 해보고 결정하자...

 

그 이후, 정독으로 [표 2-1]의 유튜브 9강을 2번을 추가로 더 듣는다.

3회 완강에 걸린 시간이 한 달이다.

자꾸 들으니...

뭔가 될 것 같기도 하다.

 

 

#2. 약간(?)의 오기(傲氣)

 

한 달에 걸친 공부로 흥분해 있던 나는 희망에 찬 어조로 몇몇 친한 지인들께 나의 스피커 제작에 대한 의견을 넌지시 물어본다.

대답은 예상과 약간(?) 달랐다.

우이씨...

 

[긴형님] 오디오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 왔는데... 괜히 고생하지 말고 그냥.. 기존 명품 복각(復刻) 정도 해보는 건 어때?

[큰형님] Hi-Fi로 가지 말고 나랑 그냥 원목으로 블루투스 스피커나 만들자... 이쁘게... 어때?

[마이콜 형님] 스피커는 악기랑 같은 거야.. 그게 하루아침에 될 것 같으면 그렇게 비쌀 이유도 없고... 명기(名器)라는 게 존재하지 않지...

 

참고로, 실명 공개를 꺼리실 분들을 위해서 닉네임을 사용했다.

 

또 하나의 충격적인 의견…

우여곡절 끝에 스피커를 만들던 도중, [그림 2-2]의 스피커 인클로저 (껍데기를 유식하게 표현하는 거라고 했죠?)를 두 명의 후배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우쭐거릴 참이었다.

 

되돌아온 대답은...

 

[네가지 없는 후배들] 오~~~ 이거 고양이 화장실로 쓰면 딱 이겠는데요.. T,,T 자동으로 똥 치우는 거 만들면 장사 대박 날 것 같은데... 그거나 하시죠...

 

그림 2-2: 고양이 화장실이 될뻔한 스피커 케이스(좌), 시판 중인 고양이 화장실 (우)

 

고양이 화장실? 이런 발칙한...  그러고 보니 고양이 화장실로 써도 될 것 같기는 하네.. 쩝...  ([그림 2-2] 우측 그림 참조)

 

지금껏 총 여덟 분께 여쭤본 결과, 

일곱 분은 온건한 어조로 말리면서도 속으로는 “말도 안 되는 야그를..”이라는 의견이 이마에 대문짝만 하게 적혀 있었고... 

단, 한분은 “얼마를 주면 내 것 만들어 줄 건데?”라는 묻지마 투자 형태이긴 하지만 기분 좋은 반응을 보여주신다. 

마지막 분께 지면을 빌어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근디 살짝 열 받는다...

내가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힝...

 

이렇게 뭔가 실낱같은 희망과 오기가 머릿속을 맴돌며 2020년 8월 무더운 한여름이 지나갔다.